계발

일본어 공부 시작

소년택이 2021. 6. 14. 11:13

나의 가벼운 일본어. 입문이라서 그럴까, 가볍긴 한데 너무 가볍다.

튜닝의 끝이 순정이라면, 덕질의 끝은 자신이 덕텐츠 제작자가 되는거다. 피규어 덕질의 끝은 피규어 제작자가 되는거고, 아이돌 덕질의 끝은 교차 편집가가 되는것이다. 덕질과 하나된 삶을 사는걸 덕업일치라 하고 파일럿이나, 여행 컬럼니스트가 그 대표라 할 수 있다. 덕업일치는 커녕 덕질의 끝 조차 이르지 못해도, 덕질하는 컨텐츠 자막 없이 볼 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벼르고 벼르던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1990년대의 부산은 보따리 장사들과 함께 온갖 일본의 "신문물"이 부산항을 통해 남포동으로 흘러들어왔고, 이것이 다시 서울을 비롯한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시스템이었다. 부산에서는 이미 중고등학교때 휩쓸고 간 루즈삭스가, 2002년도의 서울에서는 대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것을 보고 신기했다. 그 시기 일본애니 입덕을 위한 엔트리 포인트로 대표적인것이 슬레이어즈, 에반게리온, 건담, 마크로스 등이 있었는데, 아직 VCD 보다 비디오 테이프가 흔하던 그 즈음 부산은 지리적 이점으로 오덕 컨텐츠를 구하기 쉬웠다. 원본을 몇번 복제한지 모를 비디오 테이프의 화질은 그럭저럭 볼 만한 수준 이었다. 아니 애시당초 부터 업자가 정발 원본을 사서 복제한건지, 아니면 자신도 복제한걸 복제한건지 알 방도가 없었다 - 물론 잘 사는 친구는 이미 그 시절에 홈시어터에 VCD 플레이어를 가지고 나와 친구들을 초대했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본어 컨텐츠와의 인연이 25년, 26년을 넘어서고 있다. COVID-19 사태 이전 오키나와에 가족 여행을 갔을 때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내가 메뉴 설명을 듣고 주문하고 가게 사장님하고 동네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걸 보고, 일본어를 오래 사용한 아버지도 남편이 그저 애니 보면서 히히덕 거리는 오덕인줄 알았던 와이프도 신기해했다. 확실히 언어는 만시간의 법칙이 적용된다.

일본어 공부는 예전부터 하고 싶었다. 단지, 이거 말고도 할게 많으니 차일피일 미루고 미룬게 여기까지 왔다. 강산이 두번 반 바뀔동안 얻어들은게 있으면 금방 할 수 있겠지... 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일본어 전공하는것도 아니고 카운터 파트가 있는것도 아니니 자격증 까지도 필요 없고 딱 그간 25년 동안 내가 들어온 것들이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 있는 수준 까지만 하면 된다라고 생각하니까 부담도 없다. 말 그대로 정리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짜피 암기력이 딸리니 한자를 못 외운다. 그래서 JLPT 같은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서 고른게 "나의 가벼운 일본어" 이다. 광고에서는 하루 십분씩 일주일에 책 한권만 떼면 된다고 소개하는데, 원래 공부는 어렵고 무겁게 해야 한다는 주의인 내 성향과는 반대인 교재이다. 일부러 새벽에 한시간 일찍 일어나 공부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하는 만큼 초등학교 1학년 이후 고수해온 "공부는 어렵게, 끝가지, 오로지 정도로만 간다"는 정책을 양보하기로 했다(어찌 보면 이게 "일본어 공부 시작" 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일단 책 두깨는 정말 얇다. 암기력 좋은 사람이라면 하루 삼십분이면 끝낼 분량이다. 하지만 한 주에 한번 인강도 들어야 하고, (나 처럼)암기력이 딸리는 사람은 여러번 보고 또 봐야 할테니 결국 하루에 40분씩 한주동안 봐야한다. 예제는 꽤 자잘한 부분을 신경 쓴 느낌이 든다. 가타카나를 외우는건 처음인데, 비슷한 모양의 글자를 엮거나 한 주에 배울 행들의 글자를 이용해 예제 단어를 만들어 둬서 암기에 도움이 된다. 하루 3단어씩 300일 단어장도 동봉되어있으니 스스로 커리큘럼을 꾸며서 공부량을 얼마든지 늘릴 수 도 있다. 모든 교재는 처음은 쉽고 뒤는 어려우니, 입문 단계는 후다닥 진도 빼고 뒷 부분 고급 문법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도 좋을것 같다. 집합과 명제만 빽빽하게 필기한 정석 꼴이 되면 아니될것이다.

난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을 싫어한다. 물론 시작도 중요하다. 시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시작만 하고 그만두면 그 시간이 너무 허무하므로 시작 보다 더 중요한건 "지속 가능성"이라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볼때 "나의 가벼운 일본어"는 꾸준한 공부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용이 너무 간단하고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다보니... "공부를 공부답게" 생각하고 접근하는 사람 보다는, 직장 다니면서 순수하게 자기 계발 목적인 사람에게 어울릴 것 같다.

 

덧.

難波津に 咲くやこの花 冬ごもり 今は春べと 咲くやこの花
나니와즈니 사쿠야코노하나 후유고모리 이마와하루베토 사쿠야코노하나

아침 마다 부모님께서 딸 아이 유치원 통원버스를 태워주시는데, 어느날은 이걸 외고 있더랜다. 엄마들이 신기해서 물어보니 아빠가 일본어를 잘한다고 대답했다더라. 부모님도 나한테 "일본어 같이 공부하니?" 하고 물어보시는데...

전지전능한 옛신도...

죄송해요 부모님. 이 나이 먹고 아직도 만화 보고 있습니다. 아빠가 하는걸 이현이가 옆에서 곁눈질로 배웠나 봅니다.

이렇게, 딸랑구의 "만 시간의 법칙"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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